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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불설 문체학의 서두 ‘여시아문(如是我聞)’
불설 문체학의 서두는 모든 불교 경전의 고전적 서두 문구인 ‘여시아문(如是我聞)’의 화용론적 구조를 분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 문장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의미로, 경전의 말씀이 부처의 직접 발언임을 보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재현된 언어임을 선언하는 이중적 발화 구조를 가진다. 여기서 ‘나’는 아난(阿難) 존자를 지칭하면서도, 모든 청중이 자신을 포함시킬 수 있는 집단적 증언의 프레임을 생성한다.
문체학적으로 보자면 이 서두는 단순한 인용이 아니라, 말씀이 어떻게 말씀이 되는가를 언어적으로 구성하는 자기 지시적 구조이다. 이처럼 불교 경전은 그 시작부터가 발화의 권위와 정당성, 그리고 기억의 전승 체계를 언어적으로 설계하고 있으며, 그 형식 자체가 수행과 신뢰를 담보한다. ‘如是’는 객관의 진술이 아니라, 수행자의 감각된 실재를 언표로 전환시키는 감응의 문체 장치이며, ‘我聞’은 이 감응의 실천적 확인을 명문화하는 행위다.
이 문장의 독특한 점은 바로 화자와 청자의 경계를 지우는 문체에 있다. ‘부처의 말씀’ 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은 청자의 입에서 발화된다. 다시 말해, 불교 경전은 화자의 권위를 절대화하지 않고, 오히려 수행자가 스스로 화자가 되게 만드는 참여형 문체를 지닌다. 이것이 불설(佛說)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화용적 윤리 행위인 이유이다.
설법 문장의 층위론
설법 문장의 층위론은 불설(佛說)이 단일한 서술 구조가 아닌, 의도적으로 중첩된 계층적 문체 구조를 통해 진리를 전달한다는 점에 착목한다. 경전은 종종 다음과 같은 3중 구조를 보인다: (1) 부처가 설한다, (2)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3) 비구 또는 보살이 반응한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언어 층위를 통한 다차원적 화용론적 설계다.
첫째 층위는 ‘如是我聞’ 이후 바로 나오는 부처의 직접 설법이다. 여기서 부처는 종종 반복법(anaphora)과 대구문 구조(pairing sentences)를 사용하여, 청중에게 언어적 기억을 강화하는 리듬을 형성한다. 예: “모든 행은 무상하다, 모든 법은 공하다, 모든 상은 허망하다.” 이 반복은 단순한 수사법이 아니라 법의 체득을 유도하는 리듬화된 사유 기제다.
둘째 층위는 우화적 변주(narrative variation)로써 진리 내용을 비유 또는 사례로 감싸며 이야기화한다. 예컨대 《법화경》에서는 ‘불타는 집’ 우화를 통해 무지한 중생의 집착을 깨우는 방식으로 법을 재서술한다. 이는 단지 이해를 돕는 장치가 아니라, 화용론적 전이를 유도하는 구조로 작동하며, 진리의 반복 노출이 아닌 의미의 정서적 재배치를 가능하게 한다.
셋째 층위는 문장 외부의 반응으로, ‘비구들이 환희하며 받들었다’와 같은 서술이다. 이는 단순한 마침표가 아니라, 말씀을 체화한 자들의 반응을 문체에 내포시킴으로써 경전이 다시 말해질 수 있는 수행 언어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따라서 불설은 설법이자, 교육이며, 회향의 언어이다. 각각의 층위는 말하기, 느끼기, 따르기를 아우르는 언어적 삼매 구조를 이루며, 수행의 구도 자체를 문장으로 설계한다.
경전의 인칭 전략 무주화자 구조
경전의 인칭 전략은 불설의 문체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비인칭적 언어 윤리를 분석한다. 대부분의 문학, 철학 텍스트는 1인칭 혹은 3인칭 중심의 인식 주체를 통해 서사를 조직하지만, 불교 경전은 이 인식 주체를 의도적으로 해체하거나 흐릿하게 만든다. 예컨대 부처는 자아화된 주체로서 ‘나’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여래’ 혹은 ‘법’이라는 보편적 상징 주체를 통해 자신을 언표 한다.
이러한 무주화자 구조는 발화의 중심이 없음으로써 수행자 누구든지 그 발화를 소화하고 다시 발화할 수 있도록 여지를 확보한다. 화자(부처)는 있지만, 그 발화는 ‘말하는 주체’에서 ‘말하게 되는 구조’로 옮겨진다. 다시 말해, 불설은 ‘부처가 말한다’가 아니라 ‘말씀이 부처를 통해 발화되었다’는 비인격적 언어의 화용론을 따른다.
이 전략은 레비나스의 ‘타자의 얼굴’ 이론과도 연결된다. 발화는 주체를 전면에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주체 너머에서 타자를 향해 열리는 윤리적 발화여야 한다. 불교 경전은 이 점에서 언어의 사용 주체를 제거하거나 해체하고, 그 자리에 법의 울림을 남긴다. 경전의 문장은 수행자의 언어가 되기 위해 항상 무명의 상태에 놓이며, 그 무명이야말로 불교 문체학의 중심 윤리라 할 수 있다.
화용론의 변주법: 법문에서 감응으로
화용론의 변주법은 불설의 문장이 어떻게 상황, 관계, 감정, 수행 맥락에 따라 의미를 생성하거나 전환하는지를 분석한다. 화용론은 단순히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말했는가’, ‘어떤 맥락에서 말했는가’, ‘누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다룬다. 불교의 설법은 이 화용론적 변주에 있어서 맥락 중심 수행 언어의 전형이다.
부처는 같은 진리를 사람에 따라 다르게 설한다. 《유마경》에서 병을 앓고 있는 유마거사는 병든 몸이라는 조건 속에서 중생의 병을 언표 한다. 반면 《금강경》에서는 수보리에게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는 고차원의 공법을 말한다. 이는 청자의 수행 수준, 맥락, 정서, 감응력에 따라 말씀의 구조가 변화하는 유기적 언어 전략이다.
이러한 구조는 언어 사용의 목적이 정보 전달이 아니라 심층 감응의 발생에 있다는 불교적 발화 윤리를 드러낸다. 이는 현대 언어철학자인 오스틴과 서얼(Searle)의 언어행위 이론(speech act theory)과도 닿아 있다. 그러나 불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언어 사용 자체가 윤리이자 수행이며, 감응을 통해만 진리가 구조화된다고 본다.
따라서 화용론적 불설은 맥락과 감응, 수용자 반응을 고려하여 법문이 끊임없이 재조직되는 관계적 언어의 흐름이다.
경전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감응을 유도하고 다시 수행 속에서 재언어화되는 순환적 화용 구조다.
불설의 문체 윤리학
불설의 문체 윤리학은 경전에서 나타나는 침묵, 절제, 고요함의 발화 전략을 중심으로 언어의 비움에 대한 미학적·윤리적 성찰을 탐색한다. 부처는 종종 침묵으로 답하며, 때론 질문을 회피한다. 이는 무지나 회피가 아니라, 말함의 한계를 인식하고, 말하지 않음 자체가 최상의 가르침일 수 있다는 비언어 윤리의 발현이다.
예컨대 ‘십이 문제’에 대해 부처는 일체 답을 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언어의 수행적 윤리가 극단으로 밀려간 사례이며, 무언어적 발화의 고요한 기호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이 침묵은 “말하지 않음이 말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전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탈화자적 수행 미학을 구성한다.
이때 경전의 문체는 ‘말하지 않는 말’, ‘비우는 언어’로 구성된다.
경전이 말하는 방식은 세련된 수사와 논증이 아니라, 감응과 절제, 무의미 속의 무한성이다. 따라서 불설은 언어의 가능성이자, 동시에 언어의 윤리적 한계를 끊임없이 성찰하게 만드는 자기반성적 구조이다.
불설(佛說)의 문체학 맺음말: 불설 문체학이 여는 언어 수행의 길
불설의 문체학은 단순한 경전 해석이 아니다. 그것은 말의 방식과 그 말이 수행자에게 미치는 파장을 분석함으로써, 언어 그 자체가 깨달음의 통로가 되는 구조를 밝혀내는 일이다. ‘말씀’은 전달되는 정보가 아니라, 몸으로 진동하며 윤리를 구성하는 형식이며, 관계이며, 감응이다.
이 글은 불설의 언어 구조가 얼마나 고도로 설계되어 있는지, 문체 속에 어떤 수행적 장치가 내재되어 있는지를 5가지 구조를 통해 분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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