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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중국 불교 번역사는 단순한 언어적 변환의 역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과 철학 체계가 만나 새로운 문화적 종합을 창조해 낸 웅대한 서사입니다. 기원후 1세기경부터 시작된 불교 경전의 중국어 번역은 약 100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들은 인도 불교 사상을 자신들의 언어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재해석하고 토착화시켰습니다. 이러한 번역사는 단순히 불교사의 한 장이 아니라, 동서 문명의 만남과 융합을 보여주는 인류 문화사의 중요한 사례 연구로 평가받습니다.
초기 불교 전래와 번역의 시작
후한 시대의 첫 번역 시도
중국 불교 번역의 역사는 후한 명제 시대에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낙양에 와서 『사십이장경』을 번역한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기록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해서는 학술적 이견이 있지만, 기원후 1-2세기경부터 불교 경전의 중국어 번역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초기 번역자들은 대부분 서역 출신의 승려들로, 중국어에 완전히 능통하지 못한 상태에서 번역 작업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중국인 협력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며, 이러한 협력적 접근법은 후에 번역 조직의 체계화로 이어졌습니다.
안세고와 지겸의 초기 번역 활동
후한 말기에 활동한 안세고(?-168년경)는 중국 불교 번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파르티아 출신인 그는 선정(禪定)과 아비달마 전통의 경전들을 번역했으며, 특히 정교한 심리학적 분석을 담은 아비달마 문헌들을 중국에 소개했습니다.
안세고의 번역 특징은 직역에 대한 충실성이었습니다. 그는 산스크리트어 원문의 구조를 최대한 보존하려 했으며, 이로 인해 때때로 중국어로서는 어색한 표현들이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何等為四念處"(사념처가 무엇인가?)와 같은 표현은 산스크리트어 "katamāni catvāri smṛtyupasthānāni"의 어순을 직접 따른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같은 시기에 활동한 지겸(?-252)은 보다 유연한 번역 접근법을 채택했습니다. 그는 불교 경전을 번역하기 위해 전통적인 중국 문학적 표현을 활용했으며, 특히 게송(偈頌) 부분을 번역할 때 중국 시가 형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격의불교 시대의 번역 특성
도교 용어의 차용과 그 문제점들
3-4세기의 중국 불교는 "격의불교" 시대라고 불립니다. 이는 중국 전통 사상, 특히 도교 용어를 사용하여 불교 개념들을 설명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시기의 번역자들은 낯선 불교 개념들을 중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 기존의 중국 철학 용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 열반(涅槃) → 무위(無為, 무작위)
- 반야(般若) → 지(智, 지혜)
- 공성(空性) → 무(無, 공허)
- 법(法) → 도(道, 길)
이러한 접근법은 초기 중국인들의 불교 이해를 도왔지만, 동시에 심각한 문제들도 야기했습니다. 불교 개념들이 종종 도교나 유교 개념으로 오해되거나, 그들의 본래 의미가 왜곡되었습니다. 특히 열반을 도교의 "무위" 개념으로 설명할 때, 열반의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측면들이 종종 간과되었습니다.
도안과 번역 방법론의 확립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한 도안(312-385)은 보다 체계적인 번역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유명한 "삼난(三難)" 이론을 통해 번역의 어려움을 지적했습니다:
- 시간적 차이: 부처님 시대와 번역 시대 사이의 시간적 간격
- 지역적 차이: 인도와 중국 사이의 풍속과 문화의 차이
- 언어적 차이: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 사이의 언어 구조 차이
도안은 또한 번역에서 피해야 할 요소들과 번역이 어려운 이유들을 체계화하기 위해 "오실본(五失本)"과 "삼난(三難)"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중국 불교 번역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번역 이론으로 평가받습니다.
구마라습의 혁신적 번역
번역 조직의 체계화
구마라습(344-413)의 등장은 중국 불교 번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개별적인 번역 작업에 국한되지 않고 대규모 번역 조직을 구성하여 체계적인 번역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장안의 소요원에서 이루어진 구마라습의 번역 작업에는 수백 명의 학승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역할에 따라 세분화되었는데: 원문을 읽고 해석하는 역할, 중국어로 번역하는 역할, 번역문을 다듬는 역할, 그리고 최종 검토하는 역할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의역 중심의 번역 철학
구마라습의 가장 큰 특징은 의역 중심의 번역 철학이었습니다. 그는 원문의 문자적 정확성보다 의미 전달을 강조했으며, 중국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중국어 표현을 추구했습니다.
구마라습의 번역 철학은 그의 유명한 은유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는 번역을 "씹어서 다시 뱉어내는 것"에 비유하면서, 원문의 맛을 유지하되 다른 사람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직역과 의역 사이의 균형을 추구한 것으로 후대 번역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표적인 번역 성과
구마라습의 번역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금강경』, 『법화경』, 『유마경』입니다. 이러한 번역들은 높은 문학적 성취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법화경』 번역에서 구마라습은 산스크리트어 원전의 복잡한 문학적 기법들을 중국적 특성에 맞게 창조적으로 재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유품의 화택유에서 그는 인도적 상황 설정을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맥락으로 조정하면서도 비유의 본질적 의미는 완벽하게 보존했습니다.
현장의 새로운 번역 패러다임
직역 중심의 번역 철학
현장(602-664)은 구마라습과 완전히 반대되는 번역 철학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의역으로 인한 의미 왜곡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원문에 가능한 한 충실한 직역을 지향했습니다.
현장은 "신역(新譯)"과 "구역(舊譯)"을 구분하면서, 자신의 번역을 시작점으로 하여 그 이전의 모든 번역들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기존 번역들의 오류를 체계적으로 지적하고 보다 정확한 번역을 제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번역 원칙의 체계화
현장은 음역해야 하는 경우들을 체계화하기 위해 "오종불번(五種不翻)"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 비밀(秘密): 다라니와 같은 밀교적 진언
- 다함(多含): 하나의 어휘가 여러 의미를 포함하는 경우 (예: 바가바트)
- 차무(此無):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나 개념 (예: 염부제)
- 순고(順古): 관습적으로 음역되어 온 용어 (예: 아뇩다라삼먁삼보리)
- 생선(生善): 음역어 자체가 공덕을 일으키는 경우 (예: 반야)
이러한 원칙들은 매우 체계적이고 논리적이어서 후대의 번역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당서역기와 번역 방법론
현장의 『대당서역기』는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서 번역 방법론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인도 각지의 언어와 문화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함으로써, 그는 번역에서 문화적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현장은 또한 번역어의 일관성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그는 동일한 산스크리트어 용어에 대해서는 항상 동일한 중국어 번역을 사용하려고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방대한 용어집을 편찬했습니다.
중국 불교 번역어의 언어학적 특성
음역과 의역의 조화
중국 불교 번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음역과 의역의 적절한 조화입니다. 번역 불가능한 개념들은 음역으로 처리하되, 그 의미를 설명하는 의역을 병행 사용하는 방식이 발달했습니다.
예를 들어:
- 부처 → 佛(음역) + 覺者(깨달은 자, 의역)
- 보살 → 菩薩(음역) + 覺有情(깨달은 중생, 의역)
- 열반 → 涅槃(음역) + 滅度(소멸과 건너감, 의역)
이러한 이중 번역 체계는 원어의 음성적 특성을 보존하면서도 의미 전달을 명확히 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조어법의 발달
불교 번역 과정에서 중국어 조어법도 크게 발달했습니다. 특히 복합어 형성 능력이 향상되어, 복잡한 불교 개념들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새로운 한자 조합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들:
- 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등각
- 薩婆若智(살바야지): 일체지혜
- 摩訶般若波羅蜜多(마하반야바라밀다): 대지혜완성
이러한 긴 복합어들은 중국어 문법에는 생소한 것이었지만, 불교 번역을 통해 중국어의 표현 범위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번역이 중국 언어와 문화에 미친 영향
어휘의 확장
불교 번역은 중국어 어휘를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수많은 불교 용어들이 일상 언어에 스며들어 중국어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들 중 많은 것들이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상어로 정착된 불교 용어들:
- 因緣(원인과 조건)
- 業(행위와 그 결과)
- 慈悲(자비로운 마음)
- 智慧(올바른 판단)
- 功德(선행의 결과)
- 世界(우주, 세상)
문법 구조의 변화
불교 번역은 중국어 문법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긴 수식 구조와 복문의 사용이 증가했으며, 산스크리트어의 영향으로 동사의 시제 표현이 보다 정교해졌습니다.
또한 번역 과정에서 발달한 주석 전통은 중국 문헌학의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경전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발달한 주석 기법들은 후에 중국 고전 해석에도 적용되었습니다.
문학적 영향
불교 경전의 번역은 중국 문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변문"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가 등장했는데, 이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불교 경전 내용을 운율에 맞춰 서술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다양한 은유와 설화들은 중국 문학의 소재로 널리 활용되었으며, 소설과 희곡 발달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번역 과정에서의 문화적 적응
중국적 맥락에서의 재해석
불교가 중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개념들이 중국적 맥락에서 재해석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효(孝) 사상과의 조화를 위해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경전들이 특별한 주목을 받았으며, 『부모은중경』과 같은 위경도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관련된 내용들은 종종 중국적 상황에 맞게 조정되거나 생략되었습니다. 대신 중국의 사회 계급 구조에 맞는 설명들이 때때로 추가되었습니다.
종교적 실천의 변화
번역 과정에서 종교적 실천 방법들도 중국적 특성에 맞게 변화했습니다. 인도의 탁발 전통은 중국의 농업 사회에 맞지 않아 농선병수의 자급자족적 전통으로 발전했습니다.
또한 인도의 개인적 수행 중심에서 중국의 공동체적 수행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선원과 같은 집단 수행 공간이 발달했습니다.
현대적 의의와 평가
번역학사적 의의
중국 불교 번역사는 세계 번역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약 1000년에 걸친 대규모 번역 프로젝트는 인류 번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와 지속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구마라습과 현장으로 대표되는 의역과 직역의 대립은 현대 번역 이론에서도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습니다. 두 번역 철학의 장단점을 통해 우리는 번역의 본질적 딜레마를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명 교류사적 의의
중국 불교 번역사는 단순한 언어적 번역을 넘어서 문명 간 대화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체계를 가진 두 문명이 어떻게 소통하고 융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특히 격의불교에서 현장의 신역에 이르는 발전 과정은 문화적 적응의 단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초기의 단순한 대응에서 시작하여 점차 정확한 이해와 창조적 융합에 이르는 과정은 현대의 국제적 문화 교류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결론
중국 불교 번역사는 인간의 언어 능력과 문화적 적응력을 보여주는 웅대한 서사입니다. 1000여 년에 걸친 번역 작업을 통해 중국인들은 인도 불교 사상을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안에서 재창조했으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불교문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초기의 격의불교적 접근에서 구마라습의 창조적 의역, 그리고 현장의 정밀한 직역에 이르는 발전 과정은 번역학의 근본적 문제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특히 원문에 대한 충실성과 수용자의 이해 가능성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은 현대 번역학에도 중요한 참조점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번역 과정에서 나타난 언어적, 문화적 변화들은 문명간 교류가 어떻게 새로운 문화적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중국어 어휘 확장, 문법 구조의 변화, 문학적 표현의 다양화는 모두 불교 번역이라는 문화적 충돌과 융합의 산물이었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중국 불교 번역의 유산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불교 용어들은 중국 번역 전통에서 나온 것이며, 이는 문화적 번역이 가진 지속적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궁극적으로 중국 불교 번역사는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 정신의 위대한 모험이었으며, 그 성과는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 문화의 깊은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급속히 세계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소통과 이해를 모색하는 데 귀중한 지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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