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사유

불교 언어학으로 시작해 말하지 않음의 정치학까지 아우르며 디지털 시대의 불교적 성찰을 해 보려 합니다

  • 2025. 6. 10.

    by. 지성 민경

    목차

      서론: 말로 그릴 수 없는 경계, ‘없음’을 서술하는 불교 언어의 기하

      ‘공(空)’과 ‘무(無)’는 불교 철학에서 자주 혼용되지만, 언어학적 층위에서는 매우 다른 의미 작용을 갖는다.

      ‘무’는 부정적 명제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음’을 직접 지시하려는 언어적 시도인 반면, ‘공’은 실체성의 부재와 관계적 발생성을 동시에 내포하는, 언어의 프레임을 해체하는 기호적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차이는 불교 언어학에서 언어가 어떻게 존재를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수행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을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 글에서는 ‘공’과 ‘무’라는 개념이 불교 언어 내에서 어떻게 경계적인 언어 작용으로 분할되며, 그 위상학적 구조가 어떻게 언어의 공간과 시간, 의미의 좌표계를 탈중심화하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 과정은 단지 철학적 개념 비교에 머무르지 않고, 불교 언어의 기호학적 작동, 수행적 발화 구조, 지시 불가능성의 전략까지 아우르며, 존재하지 않음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언어의 문제에 접근한다.

       

      1. ‘무’의 언어 전략: 실체 제거를 위한 명제적 기법

      ‘무’의 언어 전략은 불교 언어학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고전적인 부정의 방식이다.

      “무상(無常)”, “무아(無我)”, “무유(無有)”와 같은 표현은 일정한 존재 개념을 부정하는 명제적 언어 구조를 따른다.

      이때 ‘무’는 항상 무엇인가를 전제로 한 부정이며, 즉 존재를 가정한 다음 그 존재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구조는 언어적으로는 전통적 의미의 ‘부정문’, 철학적으로는 ‘존재론적 소거’로 기능한다.

      예를 들어, “자아는 없다”는 명제는 ‘자아’라는 개념이 먼저 존재해야만 성립 가능하며, 그 제거를 통해 부정을 수행한다. 따라서 ‘무’는 역설적으로 항상 존재의 언어에 기생한다.
      불교에서 이 구조는 수행 초기 단계에서 매우 유용하며, 집착을 부수는 사유의 훈련 언어로 활용된다. 하지만 이 전략은 결국 실체 언어의 틀 안에서만 작동 가능하며, 언어를 넘어서는 초월적 인식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갖는다.

       

      2. ‘공’의 해체 문법: 관계적 존재의 기호 비틀기

      ‘공’의 해체 문법은 ‘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언어 작용을 보여준다.

      ‘공(空)’은 단순히 ‘없음’이 아니라, 실체적 자성이 없음(anātman), 즉 독립적 존재가 불가능하다는 연기(緣起)의 원리에 기반한 관계적 비존재를 말한다. 이때 ‘공’은 어떤 것도 고정된 실체로 말할 수 없다는 메타언어적 진술이며, 언어 자체의 지시 기능을 무효화시키는 수행적 구조로 작동한다.

      『중론』에서 나가르주나는 “공조차도 공하다”고 말한다.

      이는 ‘공’이라는 개념조차도 실체화하면 안 된다는 역설 구조로, 언어를 통해 어떤 개념을 말하면서도 그 언어의 작용 자체를 전복하는 구조를 드러낸다.
      ‘공’은 존재와 비존재의 중간 지대에서 언어의 구조를 무화시키며, 기호(sign)를 비기호(non-sign)로 반전시키는 언어적 비상태를 창출한다. 이때 말은 더 이상 지시하지 않으며, 수행자에게 지시 불가능성 자체를 자각하게 하는 도구로 전환된다.

       

      3. 경계의 언어학: 공과 무 사이에서 작동하는 지시 불가능성

      경계의 언어학은 ‘공’과 ‘무’가 언어 속에서 어떻게 서로를 경유하면서도 다른 층위의 작용을 일으키는지 설명한다.

      이 두 개념은 모두 ‘존재하지 않음’을 말하지만, ‘무’는 직접적인 의미의 제거를 시도하고, ‘공’은 지시 자체의 구조를 문제 삼는다. 따라서 두 개념은 지시 불가능성의 층위가 다르다.

      ‘무’는 지시 가능한 항이 존재한 후 부정되며, ‘공’은 그 지시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했음을 드러낸다. 이로 인해 ‘공’은 언어의 탈기호화 전략으로, ‘무’는 언어의 내파 전략으로 각각 작용하게 된다.
      불교 언어학은 이 지점을 ‘말의 한계를 체감하고, 말 너머를 사유하게 하는 수행적 장치’로 설정한다.

      경계에 선 수행자는 말할 수 없기에 말하고, 의미 없기에 의미를 부여하며, 지시할 수 없는 것을 지시하는 언어적 실험을 수행한다.
      이 언어는 더 이상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언어 그 자체를 깨닫게 만드는 수행의 구조로 작동한다.

       

      말로 그릴 수 없는 경계, ‘없음’을 서술하는 불교 언어의 기하

       

      4. 위상학적 언어 공간: 비존재의 위치를 사유하는 문장 구조

      위상학적 언어 공간은 ‘공’과 ‘무’가 존재하지 않음을 말할 때 형성되는 언어적 좌표계의 재편성을 의미한다.

      고전적 언어학이 의미를 고정된 단어의 조합으로 구성하는 데 비해, 불교 언어학은 ‘존재하지 않음’을 말함으로써 언어 공간을 음(陰)의 형태로 확장한다. 이때 의미는 위치를 갖지 않으며, 말해질 수 없는 것의 주변부에 ‘존재의 공백’으로 남는다.

      불교 수행자는 이 공백을 침묵이나 비유, 혹은 선어(禪語)와 같은 전통적 비지시 기법으로 메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공백에 머물며, 지시할 수 없음의 구조를 그대로 살아가는 언어 감각을 훈련한다.
      이 위상학적 공간에서는 말해지지 않는 것이 의미의 중심이 되며, 존재는 발화의 자리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발화 불가능성 속에서 떠오른다.
      이처럼 ‘공’과 ‘무’는 단지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언어 자체의 지도 위에 그려지는 음영의 곡선들이며, 이 곡선을 읽는 것이 바로 불교 수행의 언어적 훈련이다.

       

      5. 수행 발화의 철학: 말할 수 없음을 말하는 자의 언어 윤리

      수행 발화의 철학은 ‘공’과 ‘무’를 언어로 다루는 자가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윤리를 묻는다.

      불교 언어학은 말의 절제를 수행의 본질로 보며, 말하지 않음이 진리의 더 가까운 자리에 있다는 언어 윤리학적 입장을 취한다. 이는 단순히 침묵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을 깊이 인식한 뒤, 의도적으로 그것을 넘어서려는 고도의 발화 전략이다.

      불교에서 말은 항상 말하기 전과 말한 후, 그리고 말하지 못한 것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무’는 자신의 발화로 실체를 제거하지만, ‘공’은 발화의 조건 자체를 제거한다.

      이 둘을 수행자는 반복적으로 사유하며, 자신의 언어를 점진적으로 해체하고, 말할 수 없는 것과의 접촉을 연습한다.
      그는 더 이상 말로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 설명 불가능한 것을 말하고 있는 자신을 통찰하는 존재가 된다.
      이 수행 발화의 철학은 불교 언어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존재의 윤리적 방식이자 감응적 언어 실천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맺음말: ‘존재하지 않음’을 말하는 언어의 최후 경계에서

      ‘공’과 ‘무’는 단순한 부정 개념이 아니다. 그것들은 언어의 경계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접근하려는 위험한 사유의 장치이며, 불교 언어학은 이 장치를 통해 의식의 지도와 언어의 공간을 다시 그린다.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다는 것은, 곧 존재하는 언어를 조작하고 해체하며, 새로운 감응 구조를 열어젖히는 행위이다.

      우리는 이제 단지 ‘무’에 머물 수 없다. ‘공’의 언어로 나아가야 한다.
      그 언어는 우리를 침묵하게 하되, 그 침묵 속에서 들리지 않는 사유의 울림을 경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