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사유

불교 언어학으로 시작해 말하지 않음의 정치학까지 아우르며 디지털 시대의 불교적 성찰을 해 보려 합니다

  • 2025. 6. 11.

    by. 지성 민경

    목차

      서론 — 말할 수 없음과 말해야 함 사이의 불교적 언어 딜레마

      불교의 철학은 언제나 언어와 진리의 관계를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아 왔다. 진리는 말해질 수 있는가?

      진리를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단지 신비주의적 침묵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의 철학적 한계, 언어의 지향성, 기호의 유효범위에 대한 깊은 문제제기이다.
      불교는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 한 가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에 머물며, 말과 진리 사이의 간극을 수행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이 글은 불교 언어학이 보여주는 지시 불가능성의 구조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말의 불충분함과 진리의 비표상성 사이에 형성되는 무언의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수행 언어를 구성하고, 어떻게 수행자의 의식을 전환시키는지를 탐색한다.

       

      1. 지시 행위의 한계: 의미는 대상이 아니라 기대의 효과이다

      지시 행위의 한계는 불교적 언어 실천에서 가장 먼저 해체되는 구조이다.

      전통 언어학이나 분석철학에서 지시는 ‘지시자(기호)’와 ‘지시 대상(지시된 것)’ 사이의 대응 관계로 정의된다.
      불교 언어는 이 지시 구조를 수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대상’은 고정되거나 자성(自性)을 갖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연기(緣起)로 인해 발생하며, 고정된 지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지시란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해 말해지는 언어적 환상이다.

      예를 들어 “열반”이나 “공(空)”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열반이나 공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개념에 대한 기대와 사전 정의에 불과하다.
      불교 언어학은 여기서 의미란 대상이 아니라,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에 발생하는 감응의 효과임을 강조한다.
      그 감응은 고정된 지시가 아니라, 말이 벗어나는 방향, 기표가 무너지는 방향, 혹은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게 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이것이 지시 불가능성의 철학적 기초이다.

       

      2. 수행 언어의 전략: 지시 대신 감응을 유도하는 발화 구조

      수행 언어의 전략은 전통적 언어 이론이 제공하는 지시 중심 패러다임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감응 중심의 작동 구조를 배치한다. 불교에서 수행 언어는 진리를 직접 설명하거나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자는 말이 가리키지 못하는 것을 말하며, 그 말속에서 듣는 자가 자기 안의 의식과 감각을 통해 진리를 직면하게 만드는 장치를 구축한다.
      이러한 언어는 설명이 아니라 실험이며, 의미가 아니라 감응이다.

      대표적인 예가 선문답(禪問答)이다.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건초더미 속의 송곳”이라는 답이 돌아올 때, 이는 어떤 개념적 진술이 아니라, 청자의 의식을 즉각적으로 흔드는 감응적 충격 구조이다.
      이 언어는 지시할 수 없음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이며, 진리의 부재가 아니라 진리를 지시하지 않음으로써 진리를 가리키는 아이러니한 수행 방식이다. 불교 언어학은 이러한 수행 언어를 통해, 말이 의미를 드러내기보다는 무너뜨림으로써 새로운 앎의 차원을 개방하게 만든다.

       

      불교적 지시 불가능성의 철학: 말과 진리 사이의 무언의 공간

       

      3. 비발화의 기호학: 침묵은 말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의도다

      비발화의 기호학은 불교적 지시 불가능성의 핵심 전략이다.
      불교는 침묵을 말하지 못함의 결과가 아니라, 말의 지시 기제를 의도적으로 중단하는 선택적 행위로 간주한다.
      특히 선불교 전통에서 침묵은 진리를 가장 분명하게 가리키는 방식으로 간주된다.
      이는 침묵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말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언어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선사의 무언 수행은 수행자의 의식 구조를 언어의 기표-기의 체계 바깥으로 이탈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예컨대 묵언으로 설법하는 스승의 모습은 듣는 자로 하여금 언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감각, 의식, 내적 반응을 통해 진리를 감지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불교에서 침묵은 단순한 말 없음이 아니라, 말하지 않음의 철학, 비기호의 기호화, 즉 기표로 존재하지 않는 진리를 기호 구조로 전환하는 해체적 장치다.
      불교 언어학은 이 침묵을 언어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가장 진실한 방식으로 언어를 활용하는 고도의 수행 언어로 간주한다.

       

      4. 진리의 언어적 부재: 말로 도달하지 못하는 진리에 접근하는 역설

      진리의 언어적 부재는 불교 언어학이 철학적으로 도달하는 궁극적 지점이다.
      불교는 진리를 말함으로써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말,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통찰을 드러내는 발화, 그 자체를 진리로 간주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언어의 역설 구조에 도달하게 된다. 말함으로써 도달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는 명제, 즉 말의 실패를 통해 진리를 말하는 수행 방식이 그것이다.

      불교의 ‘무문관(無門關)’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진리를 가리키는 문이 없다는 선언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문이라는 구조 자체를 벗어날 때에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언어 해체의 철학을 포함한다.
      불교 언어는 이처럼 진리를 외재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내재적 붕괴를 통해 진리의 구조에 접근한다.
      이러한 언어 구조는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조우하게 만드는 작용성 자체로 존재한다.

       

      5. 무언의 공간에서 존재하기: 지시 불가능성 이후의 언어 윤리

      무언의 공간에서 존재하기는 불교 언어학이 제안하는 궁극적 수행자적 태도이다.
      더 이상 우리는 진리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직면할 수 있는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하며, 그 준비는 말의 절제가 아니라, 말과 진리 사이의 무언의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감응 능력이다.

      불교 수행자는 언어를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언어의 침묵을 실천하는 자이다.
      그는 지시하지 않되 전달하고, 말하지 않되 존재하며, 해석하지 않되 통과한다.
      이러한 존재는 단지 침묵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구조의 외부에 자리를 잡은 언어적 윤리 주체이다.
      이 무언의 공간은 말로 진리를 파악하려는 현대적 욕망을 멈추게 하고, 진리를 지시하지 않음으로써 도달하게 만드는 불교적 사유 공간을 제시한다. 여기서 말은 끝나지만, 진리는 시작된다.

       

      맺음말 — 말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수행

      불교 언어학이 보여주는 지시 불가능성은 단순히 언어의 무능력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 진리에 다가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정하고, 말이 아닌 감응, 침묵, 수행적 발화를 통해 새로운 언어적 존재방식을 제안하는 철학이다.

      우리는 이제 말이 닿지 않는 곳을 회피하지 않고, 그곳에서 머무르는 태도, 그곳을 향해 말하는 방식을 해체하는 용기, 그리고 지시하지 않음으로써 진리를 허용하는 감응적 존재성을 배워야 한다.
      불교의 언어는 우리에게 속삭이지 않는다.
      그것은 조용히 침묵하며, 말의 바깥에서 진리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