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사유

불교 언어학으로 시작해 말하지 않음의 정치학까지 아우르며 디지털 시대의 불교적 성찰을 해 보려 합니다

  • 2025. 6. 5.

    by. 지성 민경

    목차

      번역의 역설 :  '뜻을 옮김'이 빚은 철학적 충돌

      번역의 역설은 불교 경전 번역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나는 언어철학적 난제다.

      초기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 경전은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이후 한역과 티베트어, 그리고 현대의 각국 언어로 번역되며 다층적인 의미의 층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단순한 의미 전달을 넘어선 불교 경전의 언어는 수행적 지향과 해탈이라는 목적을 포함하고 있기에, 단어 하나의 번역에도 존재론적 긴장과 언어적 간극이 개입된다.

      '법(法)'이나 '공(空)'과 같은 중심 개념은 그 문화적, 사상적 문맥에 따라 매우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며, 그 차이는 경전의 실천적 효과마저 달라지게 만든다. 번역이란 단지 의미의 전사가 아니라, 철학의 이식이라는 사실은 불교 경전 번역사의 본질적인 양가성(兩價性)을 드러낸다.

      특히 '如來(여래)'를 음차로만 수용할 것인가, 의역을 시도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번역자의 철학적 입장에 따라 달라졌다. 음차는 불이(不二)의 무분별성을 유지하는 반면, 의역은 설명적이지만 오히려 개념적 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번역의 방식 선택은 단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불교 언어의 철학적 지반과 직결된다.

      번역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해석의 정치이며, 언어철학적 갈등의 실험장이라 할 수 있다.

       

      음차의 침묵 :  '말하지 않음'으로 남겨진 지시 불가능성

      음차의 침묵은 불교 경전 번역 과정에서 특히 동아시아 한역불전에 나타나는 독특한 언어 전략이다. 이는 번역자가 원어의 의미를 명시적으로 옮기기보다는 그 소리를 그대로 유지하여 의도적으로 해석을 유예하는 방식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 '반야(般若)', '열반(涅槃)' 등의 예는 산스크리트어의 음을 한자로 옮긴 대표적 사례이며, 이 과정은 언어적 침묵의 전략이기도 하다. 여기서 침묵은 무지나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지시 불가능성을 존중하는 철학적 윤리이다.

      불교는 근본적으로 언어의 지시성에 의문을 던지는 사유를 내포하고 있다.

      진리는 말로 규정할 수 없으며, 언어는 그 본성을 지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음차는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이는 지시를 포기함으로써 언어를 넘어서려는 실천적 선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음차는 단순한 표기 기술이 아니라, 의미의 과잉과 진리의 무지(無知)를 동시에 포괄하는, 철저히 불교 언어철학적인 결정이라 볼 수 있다.

      언어를 거슬러 진리를 모색하는 수행적 장치로서 음차는 그 자체로 해탈의 언어적 경계에 위치한다.

       

      의역의 위험 : 개념화가 불러온 의미의 식민화

      의역의 위험은 불교 경전 번역사에서 언어철학적 갈등의 가장 첨예한 사례로 등장한다.

      의역은 대상 언어 사용자에게 의미를 친숙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원어가 지닌 존재론적 맥락을 누락하거나 왜곡할 위험을 동반한다. 

      '공(空)'을 단순히 '비어 있음' 혹은 '무(nothingness)'로 번역할 경우, 서구 형이상학적 관념이나 허무주의적 오해와 결합되기 쉽다. 이는 공의 중도적 의미나 존재-비존재의 이분법을 해체하려는 불교적 기획을 삭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의역은 번역자에게 해석의 권력을 부여한다.

      번역자는 문화적 맥락에 맞춰 뜻을 조정하고 설명하지만, 이 과정에서 원래 언어가 담고 있던 수행적 언표행위는 종종 제거된다.

      불교의 언어는 단지 설명이 아니라, 깨달음을 지향하는 실천적 언어이기에, 의역은 수행적 긴장을 평문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번역의 편의성과 철학적 정당성은 끊임없이 충돌하게 된다. 의역은 설명하면서도 동시에 감춘다.

      그것은 번역의 탈철학화이자 의미의 식민화이며, 불교 경전 언어의 비판적 수용을 요청하게 만든다.

       

      혼종의 언어: 문명 간 언어철학의 혼성적 생성

      혼종의 언어는 불교 경전 번역이 단지 언어의 이식이 아니라 새로운 언어철학의 생성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한역 경전의 경우, 유가(儒家)의 윤리 개념, 도가(道家)의 형이상학 개념이 불교의 세계관과 뒤섞이면서 '중도', '무위', '유위법', '법신' 등의 독특한 개념어가 형성되었다. 이는 문화적 혼성(hybridity)을 기반으로 하는 언어 생성의 현장이다. 

      이 혼합은 단순한 수용이나 접붙이기가 아니라, 철학적 융합과 전복의 장이었다.

      티베트 불교 경전 번역에서는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번역위원회가 수십 년간 토론을 반복하며 고유어를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불교 경전 번역은 단순한 번역 작업이 아니라 언어철학적 창조행위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불교는 번역된 곳마다 고유의 철학어를 발명해 내며, 언어의 지형을 바꾸고 사유의 토대를 재구성하게 되었다.

      혼종은 불완전함이 아니라 생산성의 공간이며, 불교 언어학은 바로 이 생산적 전이의 구조를 해석하고자 한다.

       

      번역자의 수행: 언어철학의 실천 주체로서의 번역자

      번역자의 수행은 불교 경전 번역사에서 종종 간과되지만 결정적인 언어철학적 지점을 형성한다.

      불교 언어는 단지 진리를 설명하는 매개가 아니라, 수행과 깨달음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따라서 경전 번역은 해석을 넘어선 수행이며, 번역자는 철학적 중재자이자 수행적 전달자다.

      번역자가 어떤 언어철학적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경전의 지향과 실천적 효력이 달라진다.

      쿠마라지바(구마라습)는 단순한 번역자가 아니라, 번역을 통한 깨달음의 구조를 설계한 존재였다.

      그는 문장 구조를 간결화하고, 직관적 이해가 가능하도록 불교 개념어를 새롭게 배열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철학자의 태도였다.

      번역이란 단순히 의미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진리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묻는 언어철학적 실천이다.

      오늘날의 불교 언어학은 이 번역자의 위치를 새롭게 조명하며, 해석과 수행 사이의 경계를 다시 사유하도록 만든다.

      번역이 수행이 되는 지점에서, 언어는 단지 말이 아닌 해탈의 길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번역자의 수행: 언어철학의 실천 주체로서의 번역자
      번역자의 수행: 언어철학의 실천 주체로서의 번역자

      맺음말: 언어의 경계를 실험하는 불교 번역의 지형

      불교 경전 번역사는 단순한 언어의 교환사를 넘어, 언어철학의 경계 실험이었다.

      의미의 전이와 개념의 재구성, 침묵과 발화의 긴장, 그리고 번역자라는 실천 주체의 철학적 지위는 모두 번역이라는 행위를 통해 드러난다.

      불교 언어학은 바로 이 복잡한 번역의 역사 속에서 언어의 가능성과 한계를 재사유하고, 해탈이라는 궁극 목적을 위한 언어적 조건을 탐색한다.

      번역은 불완전한 동시에 창조적인 언어의 실험장이며, 불교는 그 실험을 통해 각 지역에서 새로운 철학을 발명해 왔다.

      오늘날 우리는 이 번역의 철학을 다시 되새기며, 언어를 넘는 언어의 가능성을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