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사유

불교 언어학으로 시작해 말하지 않음의 정치학까지 아우르며 디지털 시대의 불교적 성찰을 해 보려 합니다

  • 2025. 6. 6.

    by. 지성 민경

    목차

      열반의 언어적 모순 : 지시할 수 없는 것을 말하다

      열반의 언어적 모순은 불교 언어학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으로 자리 잡는다.

      ‘열반(涅槃, nirvāṇa)’이라는 말은 마치 어떤 구체적인 실재를 지시하는 것처럼 쓰이지만, 그 실체는 언어로 정확히 설명되거나 명확히 가리킬 수 없는 경지로 간주된다. 이로 인해 열반이라는 용어는 언어 자체의 지시 기능에 대한 철학적 회의를 일으키며, 말이 닿을 수 없는 진리를 언어로 호출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인 모순을 수반하게 된다.

      말로는 닿을 수 없는 열반을 굳이 ‘말’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은 수행자와 해석자 모두에게 깊은 언어철학적 물음을 남긴다.

      이 모순은 불교적 해탈 개념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열반은 생사윤회라는 언어적·사상적 체계를 벗어난 상태이므로, 개념적 지시로 포착될 수 없다.

      경전은 열반을 묘사하고, 수행자는 열반을 말로 설명하려 한다. 이는 곧 ‘지시할 수 없는 것을 지시해야 하는 언어의 역설’이며, 이 역설은 불교 언어학이 다루는 가장 도전적인 과제가 된다. 열반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오해하기 시작한다.

       

      무지시적 언어란 무엇인가 : 열반 개념의 탈지시성

      무지시적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열반이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철학적 구조를 해명하는 데 핵심적이다.

      무지시적 언어란 전통적인 기호학의 틀에서, 특정한 사물이나 개념을 직접적으로 지시하거나 참조하지 않는 언어 형식이다.

      열반은 바로 이러한 무지시적 언어의 대표적인 예로, 그것은 ‘무언가’를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설명하지 않음’을 유지하는 언어적 태도에 가깝다. 불교 언어학에서 열반은 지시보다는 ‘지시의 철회’를 수행하는 발화로 이해된다.

      '열반'은 지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는 언어적 지시의 습성을 해체하고자 하는 수행의 장치로 기능한다.

      이와 같은 언어는 지시의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실패 그 자체를 수행적으로 수용하는 전략이 된다.

      열반은 무엇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말이 사라지는 지점을 지시하는 말이다.

       

      열반의 음차와 의역: 언어적 전략이 드러내는 철학

      열반의 음차와 의역은 불교 경전 번역과 해석에서 언어철학적 입장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산스크리트어 ‘nirvāṇa’를 한자로 음차 하여 ‘열반’이라 읽는 것 자체는 번역의 방식을 통해 이 개념이 갖는 탈지시성과 철학적 긴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반영한다.

      단순 음차는 개념의 불가사의함을 유지하려는 전략이고, 의역은 이해를 도모하되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이다.

      열반을 ‘불의 꺼짐’ 혹은 ‘해탈의 경지’로 해석하는 의역은 개념적 명확성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열반의 초개념적, 초경험적 성격을 손상시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수행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오히려 수행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열반이라는 단어가 어떤 방식으로 번역되거나 설명되는가에 따라, 수행자의 이해와 경험은 전혀 다르게 형성된다.

      따라서 언어적 전략은 단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철학적 입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열반을 발화하는 행위: 수행어로서의 언어적 작용

      열반을 발화하는 행위는 단순한 개념 전달이 아니라, 수행적 장치로서의 언어 작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불교에서는 언어가 진리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길을 열어주는 수행의 일부로 작용한다.

      열반이라는 단어를 발화하는 순간, 그것은 단지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하나의 수행행위가 된다. 이때 열반은 개념이 아니라 ‘진동’이며, 발화는 그 진동을 세계에 일으키는 행위다.

      언어를 의미의 전달 수단이 아닌 에너지적 실천으로 전환시키는 이러한 구조는 불교 언어학에서 수행어(soteriological utterance)라는 독특한 언어 범주로 다뤄진다.

      열반이라는 발화는 듣는 이에게 해탈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해탈이라는 가능성을 ‘지금-여기’에 활성화시키는 언어적 사건이다. 이 점에서 열반은 존재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존재로부터 물러서는 발화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열반’이라는 말은 무엇을 지시하는가 : 무지시적 언어의 해석
      열반’이라는 말은 무엇을 지시하는가 : 무지시적 언어의 해석

       

      해석을 유예하는 말: 열반의 언어적 침묵 구조

      해석을 유예하는 말이라는 개념은 열반이라는 용어가 지시보다 더 중요하게 구현하고자 하는 언어적 구조를 설명해 준다. 열반은 발화되지만 해석되지 않으며, 오히려 해석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는 해석 불가능성 자체를 수행의 일부로 포섭하는 불교의 언어 윤리를 보여준다.

      해석이란 개념화이며, 개념은 고정이고, 고정은 집착이다. 열반은 그 집착을 끊기 위한 ‘말하되 말하지 않는 언어’다.

      이러한 언어 구조는 침묵을 동반한다.

      열반은 설명될 수 없는 것을 굳이 설명하지 않기 위한 말이며, 그 말은 침묵에 가까워진다.

      불교 언어학에서 이러한 구조는 ‘의도된 무의미’, 혹은 ‘지시 거부적 발화’로 분류되며, 이는 언어를 통해 언어를 해체하려는 철학적 태도이다.

      열반이라는 단어는 궁극적으로는 말 자체를 무화시키고, 해석을 유보시킴으로써 언어 바깥의 진리를 암시한다.

      이러한 방식은 불교 언어가 어떻게 침묵과 발화를 동시에 포용하며, 수행의 도구로 언어를 재배치하는지를 보여준다.

       

      맺음말: 지시를 넘는 언어, 말의 한계를 지시하는 말

      ‘열반’이라는 단어는 단지 해탈이라는 종교적 이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가지는 지시 기능의 한계를 철학적으로 실험하는 발화 구조로 작동한다.

      ‘무엇’을 설명하지 않으며, ‘어디’를 가리키지 않는다. 지시 자체의 집착을 끊기 위한 수행적 장치이며, 언어의 가장 깊은 윤리적 실천이다.

      열반은 언어가 포기되는 지점에서, 다시 언어가 시작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 자체로 불교 언어학의 최전선에서 논의되고 있는 수행적 기호다.

      말이 지시를 멈출 때, 말은 진리에 가까워진다. 열반은 그 침묵의 경계선에서 서성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