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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비의도적 발화란 무엇인가: 계획되지 않은 말의 구조
비의도적 발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선어록(禪語錄)을 언어학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일반 언어행위는 의사전달을 위한 목적과 의미의 명확한 설정, 그리고 일정한 문법적 질서 속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선어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불연속적이거나 문법적으로 해체된 말들이 종종 수행의 핵심 순간에 등장하며, 그 자체로 깨달음을 촉발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때의 발화는 의도된 담론 구조에서 벗어난 말, 즉 비의도적 발화(unintended utterance)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발화는 질문과 응답의 전통적인 언어적 문맥을 탈구시키며, 담화의 흐름을 급격히 전환시킨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또는 "밥은 먹었는가"와 같은 문장은 발화 시점에서 표면적으로는 일상적이거나 모순된 언어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언어를 통해 언어를 전복하려는 수행적 목적이 숨겨져 있다.
말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벗어난 이 구조는, 바로 그 비의도성 때문에 더욱 강력한 수행적 작용을 일으킨다.
선어의 효과는 말의 정확성에서가 아니라, 말의 불확실성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비의도적 발화의 가능성 : 선어록 속 돌발적 문장의 수행적 기능 돌발적 문장의 담화전략: 질문 아닌 질문, 응답 아닌 응답
돌발적 문장의 담화전략은 선어록에서 말이 전통적인 대화 규범을 어떻게 전복하는지를 보여준다.
선어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문답은 일정한 문법적 질서나 논리적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말은 자주 파열되거나 논리의 연쇄를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때 선사의 돌발적인 발화는 질문이지만 질문이 아니며, 응답이지만 응답이 아니다.
그것은 해답을 주기보다는 질문 자체를 해체하고, 개념적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장치다.
담화언어학적으로 보면, 이는 말의 행위성을 극대화하는 비정상화된 담화행위(disrupted speech act)이다.
일반적인 담화는 의미의 안정적 전달을 목표로 하지만, 선어의 돌발 발화는 오히려 의미를 파괴하고, 언어의 구조적 안정성에 균열을 만든다. 이러한 파열은 제자의 사고와 언어 습관을 교란시키고, 스스로 언어적 ‘자아’를 해체하게 만드는 수행의 일환이다. 선사의 한 마디는 개념이 아니라 충격이며,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종의 언어적 수행 충돌이다.
수행의 언어기제: 비논리성이 생산하는 인식의 전환
수행의 언어기제는 선어록의 비의도적 발화 구조가 단지 이상한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수행 전략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선어는 자주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사물, 상황, 감각적 묘사를 갑작스레 끌어들인다. 예컨대, "나무가 걷고, 개가 불경을 설한다"는 말은 언뜻 보면 상식 밖의 문장이지만, 이 구조는 언어가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이분법적 세계관—예: 주체/객체, 인간/비인간, 의미/무의미—을 해체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언어철학적으로 이는 비논리성의 전략적 도입이며, 선어는 이 비논리성을 통해 청자 또는 수행자 내면의 ‘이해-욕망’을 무너뜨린다. 논리가 무너지면, 언어를 통한 지식 습득이 아닌, 직관적 자각이 발생할 수 있는 틈이 열리게 된다.
이때 말은 의미 전달이 아니라, 사고 전환의 기폭제가 된다. 수행자는 ‘무엇을 의미하나?’라는 질문을 내려놓고, ‘이 말이 나에게 어떤 충격을 주는가?’라는 감응의 차원에서 언어를 받아들이게 된다.
선어의 비의도적 문장은 그렇게 자각의 문을 여는 언어적 도끼가 된다.
선어의 청각적 효과: 리듬, 간결성, 순간적 타격
선어의 청각적 효과는 돌발적 발화가 주는 직접적 인식 충격의 한 축을 형성한다.
선어록의 문장은 자주 짧고, 날카로우며, 리듬이 있으며, 일종의 언어적 '타격성'을 지닌다. 이는 음성언어학적으로 분석하면 공명, 강세, 단절이라는 요소로 구조화된다.
짧고 단절된 문장일수록 청각적으로 더 즉각적인 주의를 유도하며, 이는 일반적 설명형 문장보다 훨씬 더 깊은 감각적 인입을 유발한다. 이러한 효과는 문장의 의미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과 소리 구조에서 발생한다.
말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톤, 리듬, 속도, 발화 시점에서 강렬한 인식의 전환을 촉발할 수 있다.
선어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말해졌는가’이다. 말은 곧 감각의 자극이 되며, 청각적 충격은 수행자의 내면을 진동시켜 사유의 전환을 유도한다.
선어의 돌발성은 시청각적 수행 장치이며, 언어의 미학이 아니라 언어의 충격으로 기능한다.
언어를 파괴하는 말: 선어의 무지시적 수행 언어학
언어를 파괴하는 말은 선어의 본질을 드러내는 문장 구조다.
선어는 언어를 넘기 위한 언어이며, 의미를 무효화함으로써 진리를 말하지 않고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는 무지시적 발화(non-referential utterance)라고 불릴 수 있으며, 이는 대상도, 개념도, 감정도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시의 기능을 붕괴시킴으로써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고, 수행자는 그 잔해 속에서 자각의 불씨를 만나게 된다. 이는 곧 언어 해체를 통한 언어의 재정립이기도 하다.
선어는 말을 부정하지만,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따라서 선어는 끊임없이 ‘말하면서 말하지 않는’ 경계를 오간다.
이 경계에서 말은 지시를 멈추고, 수행적 충격으로 변모한다.
이는 언어를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선어의 발화는 문법적 해체이자 인식적 개벽이며, 비의도성 속에서 가장 날카로운 의도를 품은 수행 언어다.
맺음말: 말의 탈주선 위에서 수행하는 언어
선어록은 단지 고사적 문헌이 아니라, 언어가 어떻게 수행으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급진적인 사례다.
돌발적 문장, 비의도적 발화, 비논리적 구조, 그리고 파열된 담화는 모두 수행자의 고정된 언어 습관을 무너뜨리고, 그 틈 사이로 자각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선어는 언어를 믿지 않지만, 언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말의 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수행적 말의 철학이다.
우리는 선어를 통해 언어의 파괴가 어떻게 수행이 되는지를 본다. 말이 멈추는 곳에서, 수행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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