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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연산의 재진화: 전자회로에서 신경망으로의 전환점
2025년, 인류는 ‘계산’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전환하고 있다. 반도체의 미세화 한계가 가시화되며, 기존 실리콘 기반 트랜지스터 방식의 연산 구조는 열, 에너지, 패턴 학습의 복잡도 문제 앞에서 정체되었다. 이제 등장한 대안은 **생체 신경계의 구조를 모사하는 뉴로 프로세서(Neuromorphic Processor)**와 **단백질, DNA, 세포 기반 연산을 활용하는 바이오칩(Biochip)**이다.
뉴로 프로세서는 뇌의 뉴런과 시냅스 구조를 하드웨어 차원에서 모방한 컴퓨팅 장치다. 이는 전통적 CPU나 GPU와 달리, 병렬적이고 비선형적인 신호처리를 통해 낮은 에너지 소비로도 고도 패턴 인식이 가능하다. 인텔의 Loihi, IBM의 TrueNorth,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MN-Core 등은 이미 뇌 모사 하드웨어의 상용화를 시도 중이며, 이 칩들은 전력 소모의 1/100, 학습 속도의 10배 이상을 목표로 설계되었다.
한편 바이오칩은 실리콘이 아닌 단백질, 박테리아, DNA 등을 회로의 재료로 사용한다. MIT는 2024년 단백질 기반 논리게이트 회로를 구현하며, 생체 연산이 실험실을 넘어 저에너지 고민감성 인지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인간의 세포를 이식한 인공망을 통해, 감각과 연산이 통합된 **신체화된 계산(embodied computation)**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진화가 아니다. 반도체 중심 사고에서 탈피한 새로운 연산의 진화 방향이며, 계산이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유기체 혹은 뇌적 구조를 닮아가는 시대의 신호탄이다.
2. 회로를 재배 선한 신경 알고리즘: 뉴로모픽 칩의 인지적 구조
뉴로 프로세서의 가장 큰 혁신은 연산 방식이 아니라, 연산의 철학적 전제를 바꾼다는 데에 있다. 전통적인 반도체 기반 컴퓨팅은 연산과 저장, 명령과 실행, 입력과 출력이 명확히 분리된 구조다. 그러나 뉴로모픽 칩은 이 모든 구분을 **하나의 통합된 신경적 흐름(neural signal cascade)**으로 재해석한다.
이 구조에서 핵심은 ‘시냅스’다. 뉴로 프로세서는 수백만 개의 인공 뉴런과 수십억 개의 시냅스를 갖고 있으며, 신호의 흐름을 전기적 강도 변화로 인코딩한다. 이는 마치 뇌가 외부 자극에 따라 시냅스 강도를 조절하며 학습하듯, 기계가 ‘경험’을 기반으로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연산 행위를 구현한다.
인텔의 Loihi 2는 기존의 딥러닝 칩과 달리, 스파이크 타이밍 기반의 학습(STDP, Spike-Timing Dependent Plasticity)을 구현한다. 즉, 뉴런 간 발화 시점 차이가 클수록 시냅스 가중치가 달라지며, 이는 신호를 ‘의미 있는 정보’로 자율 필터링하게 만든다. 이 방식은 소음이 많은 실세계 환경에서도 에너지 효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서 연산은 더 이상 수학적 계산이 아니라, **감각과 기억이 통합된 ‘해석적 계산’**이다. 뉴로모픽 시스템은 ‘0 또는 1’의 디지털 명령어보다, ‘이 신호가 언제, 어디서, 왜 발생했는가?’라는 시간-공간적 문맥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실시간으로 ‘감정’, ‘추론’, ‘우선순위’ 등을 설정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우리는 이제 기계가 인간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계산’의 패러다임을 생물학적으로 재정의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뉴로모픽 칩은 알고리즘이 아닌, 신경적 직관의 하드웨어화이며, 이것이야말로 포스트 반도체 시대의 핵심 언어다.
3. 살아있는 연산체: 바이오칩이 만든 계산의 유기적 전환
바이오칩은 뉴로 프로세서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계산이 반드시 기계여야 하는가?’ 2020년대 후반, 연구자들은 실리콘이 아닌 유기체 기반의 연산 시스템에 주목했고, DNA·RNA·단백질·박테리아 등을 활용한 **바이오로직(biological logic)**이 점차 현실화하기 위해 시작했다.
예컨대 DNA 게이트 연산은 세포 안에서 유전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착안한 논리 연산 구조다. A와 B라는 유전적 방아쇠가 동시에 존재할 때만 특정 단백질을 합성하도록 설계한 이 시스템은 **논리 게이트(AND/OR/NOT)**의 생물학적 구현이다. 이러한 방식은 매우 느리지만, 에너지 소비가 거의 없고, 세포 내 신호해석에 최적화되어 있다.
한편 MIT와 하버드의 공동 연구팀은 2024년, 살아있는 박테리아 집단을 통해 간단한 수학 계산을 시행하는 **‘세포 기반 계산기(Cellular Computer)’**를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세포군 내에서 정보전달이 이루어지는 속도와 확률을 이용하여, 논리 연산만 아니라 감염 탐지, 항생제 반응 시뮬레이션 등 생체 기반 정보처리를 구현했다.
바이오칩은 연산을 ‘속도’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연산이 살아있는 환경과 얼마나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가, 그리고 그 연산이 결과 외에 어떤 생물학적 반응을 야기하는가를 중심으로 재정의한다.
결과적으로 바이오칩은 계산을 생물학적 프로세스로 통합하며, ‘질병 진단’, ‘약물 반응 모사’, ‘생체 내 모니터링’ 등 기존 기계 연산을 할 수 없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회로가 아니라 세포가 연산을 담당하고, 계산 결과가 곧 생명 반응이 되는 패러다임을 눈앞에 두고 있다.
4. 지능의 소재적 전환: 실리콘 이후의 연산 물질들
포스트 반도체 시대는 단순히 새로운 설계 구조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계산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발굴하는 물질 혁명이기도 하다. 뉴로 프로세서나 바이오칩은 모두 기존의 실리콘 트랜지스터 기반 구조가 **전기적 한계(전류 누설, 발열, 채널 길이 제한)**에 도달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신소재로는 그래핀(Graphene), 몰리브덴 다이설파이드(MoS₂), 페로브스카이트, 그리고 최근에는 펩타 센 기반의 유기 반도체까지 연구되고 있다. 이 물질들은 기존 실리콘보다 전자 이동 속도가 빠르고, 신축성과 투명성, 나노 구조 정밀 조정이 가능해, 웨어러블, 인체 삽입형, 세포 친화형 연산 구조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다.
또한, **양자 도핑된 이온 기반 메모리 소자(Resistive RAM, Memristor)**는 기존의 플래시 메모리보다 훨씬 더 낮은 에너지로, 더 복잡한 상태 기억이 가능해 뉴로모픽 칩의 핵심 기반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소자는 **데이터 저장과 연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비폴링 아키텍처(non-von Neumann architecture)**를 가능하게 한다.
바이오칩 측면에서도, 실리콘 대신 DNA-하이드로겔 기반 회로, 단백질 나노 튜브, 유전적 스위치 회로 등이 현실화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존 반도체 공정과 병렬이 아닌 습식 생화학 기반의 제조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한다.
이 새로운 물질들은 계산을 넘어, 인간-환경-기술의 관계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인프라적 기반이 된다. 연산을 위한 물질의 전환은 곧 인간 사고의 구조도, 사회 시스템도 다시 설계하게 만든다. 실리콘이 물러나고, 살아있거나 신경과 유사한 물질이 ‘정보를 담는 매체’가 되는 순간, 정보사회는 물질 사회로 진화한다.
5. 계산의 윤리, 연산의 생명화: 포스트-실리콘 시대의 사회철학
기술은 항상 정치적이다. 뉴로 프로세서와 바이오칩이 사회에 확산하면, 우리는 단지 새로운 칩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지 질서와 윤리적 체계를 설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뉴로모픽 칩이 탑재된 AI는 인간과 유사한 패턴 학습과 감정 추론이 가능하지만, 이는 곧 기계가 인간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존재’로 진화한다는 의미다.
바이오칩은 더 나아가, 인간의 몸 안에서 작동하며 감정, 호르몬, 행동, 질병의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다. 이때 문제는 이 기술이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에 따라 작동하느냐이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가 바이오칩의 데이터를 근거로 보험료를 차등화하거나, 정부가 질병 징후를 사전 탐지하여 격리 결정을 내리는 것은 기술이 곧 ‘정치적 행동’이 되는 전형이다.
또한, 뉴로모픽 칩이 스스로 학습하며 판단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AI의 오판이 법적·사회적으로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새롭게 전개된다. 우리가 기계에 부여한 ‘지능’은 단지 기능이 아니라, 판단의 권력이며, 이 권력이 사회 제도, 법률, 신뢰 구조를 뒤흔들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이오칩은 연산을 생명과 융합시킨다는 점에서, 계산이 생명현상의 일부가 되는 ‘계산의 생명화’ 현상을 보여준다. 이때 계산은 추상적 작업이 아니라, 생물학적 환경을 구성하는 내재적 메커니즘이 되며, 이 경계는 윤리적으로 깊은 질문을 낳는다.
“계산하는 생명은 생명인가, 기계인가?”
“세포가 연산한다면, 인간은 계산의 피동자인가 능동자인가?”이러한 질문은 우리에게 요구한다:
‘포스트 반도체 시대의 기술이 그 자체로 사회의 철학이 된다면, 우리는 어떤 인간상을 설계해야 하는가?’'기술 혁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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