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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나'를 말하지 않는 언어적 주체의 비우기 실험
일반 언어 구조에서 ‘주어(subject)’는 발화의 중심이며, 문장의 기점이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느낀다”와 같은 표현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주체화함으로써 자아 중심적 의미망을 형성한다. 그러나 불교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의심한다. 특히 초기 불교와 대승불교 모두에서 ‘무아(無我)’는 핵심 교의이며, 그 철학은 언어의 구조에도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불교 언어는 ‘나’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주체의 환상을 해체한다.
《숫따니빠따》나 《법구경》과 같은 초기 경전들을 살펴보면, “나는 ~하다”는 표현보다는 **“괴로움이 있다”, “식이 흐른다”, “몸이 늙는다”**와 같은 비개인화된 서술이 더 일반적이다. 이는 단순한 문체의 차이가 아니다. 불교 언어는 ‘말하는 자’를 전면에 세우지 않고, 사건(event)을 중심으로 기술함으로써 주어의 해체를 수행적으로 실현한다. 다시 말해, 불교 문장은 ‘누가?’라는 물음 이전에, **‘어떻게 발생하는가’**에 주목한다.
2. 비주체적 발화 구조인 법(法)이 말하는 언어의 자리
불교에서는 진리를 가리키는 법(法)이 자율적으로 발현된다고 여긴다. 붓다는 진리를 ‘발견한 자’이지, 창조한 자가 아니다. 이 구조는 언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중아함경》이나 《상윳따 니까야》에서 붓다의 설법은 언제나 법이 스스로 드러나는 형식으로 서술된다. ‘붓다가 말한다’는 문장이 아니라, ‘이와 같이 들었다(如是我聞)’라는 청자의 수용 위치에서의 발화 구조가 강조된다.
이러한 발화 방식은 화자의 실체를 최소화하면서도, 언어적 진동을 최대화하는 구조다. ‘나’라는 중심 없이 진리가 발화될 수 있는가? 불교 언어는 이 실험을 2,500년 전부터 수행해 왔다. 불타의 말은 화자의 주체성을 강화하지 않으며, 오히려 법이 중계되는 장(場) 으로써 언어를 재배치한다. 이것은 서양 언어철학에서 말하는 ‘탈주체적 담론 구조’와도 유사하며, 언어의 본질적 위치를 전환하는 불교적 기획이다.
무아와 주어의 해체: 불교 언어의 비개인적 문장 구성 3. 불교 언어의 문법 해체가 되는 ‘주어 없는’ 문장 전략의 윤리성
문법적으로 주어가 결여된 문장은 종종 비문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불교 언어는 이러한 비문법적 구조를 윤리적 실천의 일환으로 받아들인다. '무아'는 단지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언어의 구조 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하며, 이는 곧 ‘말의 구성 방식’에 대한 윤리적 재고를 요구한다. 불교 문장은 주어를 숨기고, 대상을 구체화하지 않으며, 지칭 불가능성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청자에게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 전략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존재론적 결단이다. 말하는 자가 사라지는 자리, 혹은 화자의 실체가 사라진 문장은 곧 ‘나’라는 고정된 자아의 환영을 붕괴시킨다. 이 문장들은 주체를 제거하면서, 현상 그 자체를 마주하도록 유도한다. 이것은 ‘무아’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아를 말하는 방식 자체가 무아적일 수 있는가라는 언어적 윤리의 실천이다.
4. 감응의 주체 없는 언어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렇다면 주어 없이 어떻게 말이 작동할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불교 언어학은 ‘감응(感應)’이라는 개념을 호출한다. 감응은 주체와 객체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직관적 의사소통 구조다. 이는 말의 구조가 청자에게 닿는 것이 아니라, 청자의 상태에 따라 스스로 울리는 언어 구조를 의미한다. 말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가 그 말에 감응함으로써 의미가 발생한다.
이러한 언어 구조에서는 ‘말하는 자’는 사라지고, **말과 듣는 자 사이의 무주체적 장(場)**만이 남는다. 화두, 염불, 진언, 선문답 등은 모두 감응의 문법 안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구조다. 불교 언어는 그러므로 일방향적 전달이 아니라, 쌍방향적이되 비주체적인 특이한 구조를 지닌다. 주어가 없기 때문에 더 넓은 의미망이 가능하며, 말하는 자 없이 더 깊은 감응이 이루어진다. 이 언어는 곧 윤리이며 수행이다.
5. 무아 문장이 되는 탈자아적 글쓰기와 수행적 언어혁명
현대 언어는 여전히 자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SNS의 프로필, 블로그의 자기 서술, 광고 카피 속의 1인칭 서술은 모두 자아를 전시하고, 강화하며, 마케팅하는 언어다. 이 구조 속에서 무아적 언어는 실종되었으며, 말은 주체를 위한 기호로 전락했다. 그러나 불교 언어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의 구조를 다시 사유하라고 요청한다. 언어는 나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해체하기 위한 수행적 통로여야 한다.
‘무아의 언어’는 단지 철학적 메시지가 아니라, 말하는 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것은 주어를 없애는 문장 실험이자, 자아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언어적 수련이다. 나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초월하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감지하는 언어 ― 그 언어가 불교 언어학의 지향점이다. 이는 단지 고대 경전의 문체가 아니라, 현대의 언어 생태계에 던지는 윤리적 개입이자, 탈자아적 문명의 서사적 전환이다.
🧘 주어가 사라지는 그곳에서 말은 수행이 된다
불교 언어학이 지향하는 문장은 말하는 자가 사라지는 문장이다. '나는'으로 시작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넓고 더 깊게 다가가는 언어가 가능해진다. 말의 중심에서 자아를 제거할 때, 언어는 수행의 장이 되며, 말은 존재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무상성을 마주하게 하는 거울이 된다.
우리는 불교 언어학을 통해 다시 묻는다.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주어는 왜 필요한가?”, “언어는 자아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실천적 응답은 주어를 해체하는 문장, 즉 무아적 발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흐름과 관계 속에 놓인 존재를 감지하게 된다.
말하지 않음의 문장, 나를 말하지 않는 언어 ―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다시 회복되어야 할 불교적 언어 윤리의 기초이자, 수행 언어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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