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사유

불교 언어학으로 시작해 말하지 않음의 정치학까지 아우르며 디지털 시대의 불교적 성찰을 해 보려 합니다

  • 2025. 6. 2.

    by. 지성 민경

    목차

      오온 언어학의 서문

      오온 언어학의 서문은 불교가 인간 존재를 ‘실체’로 정의하지 않고, 다섯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적 구성물로 파악한 언어적 기술 구조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오온이란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다섯 작용을 말하며, 이 다섯은 단일 주체의 표현이 아닌, 지속적 상호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해체되는 존재 구성 기제다.

      불교는 이 존재의 다층적 구성을 기술하기 위해, 단순한 '나(I)'라는 일원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다층적인 오온 개념을 통해, 언어가 실체를 고정하지 않고 상태와 관계, 작용과 감응을 기술하는 동적 구조를 구현하게 한다. 이는 존재를 말할 때 '나는 생각한다', '나는 본다'가 아니라, '색이 나타나고 수가 일어나며 상이 작동한다'는 분산적 주어 구조를 통해 표현하는 불교적 언어 사유다.

      이와 같은 기술 방식은 서양의 주체 중심 언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존재를 하나의 점이 아닌 과정의 연속으로 언어화한다. 오온의 언어는 ‘존재’가 아니라 ‘구성’, ‘정체성’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하며, 언어를 통해 실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 없음(無我)을 드러내기 위해 말한다는 윤리적 사유 체계다.

       

       

      존재의 다층 구조를 말하는 기술 오온의 언어학
      존재의 다층 구조를 말하는 기술 오온의 언어학

       

      감각을 언어화하는 방식

      감각을 언어화하는 방식은 오온 중 색(色)과 수(受)의 언어 작동 방식을 분석한다.

      색은 외부 세계의 대상 혹은 육체를, 수는 그 대상에 대한 감각적 수용을 의미한다. 이 둘은 지시하는 언어가 아니라, 지각을 구성하는 언어적 감응 구조를 형성한다.

      불교 경전에서 색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인식의 조건 속에서만 드러나는 상호작용적 현상성이다. 예컨대 “눈으로 본다”는 행위는 '눈'과 '대상'과 '빛'과 '의식'의 결합 속에서만 일어난다. 언어가 이를 ‘색’으로 표현할 때, 그 말은 어떤 실체를 지칭하지 않고 관계의 장을 드러낸다.

      수(受) 또한 단순한 감정이나 느낌이 아니라, 색을 받아들여 의식의 공간에서 감응하는 언어적 여백이다. 이는 현대 감각언어학에서 말하는 '감각적 언어 표현(sensory language)'과 유사하지만, 불교에서는 수가 그 자체로 언어적 반응의 중개 장치로 간주된다. 감정이 아니라 관계적 열림의 구조다.

      색과 수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외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구성 과정을 기술하는 것이다.

      불교는 감각의 명명을 통해 세계를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구조를 분해함으로써 세계의 고정성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한다.

       

      개념 작용의 기호화

      개념 작용의 기호화는 오온 중 상(想)과 행(行)이 어떻게 언어 내에서 개념화와 의지 작용을 구성하는지를 다룬다.

      상은 인식 대상의 형상을 마음에 떠올리는 능력이며, 행은 그 개념에 따라 움직이는 심리적·의지적 작용이다. 이 두 요소는 불교 언어학에서 언어의 구조화와 전개, 판단과 해석의 메커니즘을 결정한다.

      ‘상’은 개념 형성이자 이미지의 기호화 작업이다. 그러나 이 기호화는 고정된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인상(impression)의 배열이다.

      ‘꽃’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경험된 모든 꽃들의 인상, 그 냄새와 색깔, 촉감과 관련된 심상들을 포함한다. 따라서 ‘상’의 언어는 지시 기호가 아니라 감응 기호다.

      ‘행’은 이 상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의지, 충동, 기획, 언어적 판단의 계열적 흐름이다. 이는 곧 언어 구조 안에서 문장이 연결되는 문법 구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장은 하나의 판단이자 의지의 흐름이며, 이 흐름이 곧 행의 언어학이다. 수행자에게 있어 행은 단순한 말하기가 아니라, 그 말이 의식과 감각을 어떻게 통과하며 재배열되는지를 드러내는 사유 작용이다.

      상과 행을 언어로 기술하는 것은 단지 생각을 말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각이 형성되는 구조, 판단이 작동하는 순서, 말이 태어나는 방식 자체를 해부학적으로 전시하는 언어 사유의 실험이다.

       

      오온 언어학의 종합적 전환점인 식(識)의 분열과 언어의 탈중심화

      식의 분열과 언어의 탈중심화는 오온 중 마지막 요소인 ‘식(識)’의 언어적 기능을 분석하면서, 오온 언어학 전체가 어떻게 주체 중심 언어 구조를 붕괴시키는가를 보여준다.

      식은 의식이며, 대상과 감각을 연결하는 가장 중심적인 작용이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식은 일원적 자아의식이 아니다. 오히려 색·수·상·행과 각각 다른 조건에서 발생하는 분산된 다중의식 구조이다.

      식은 자아적 판단을 생성하지 않으며, 단일한 인식 주체도 전제하지 않는다. 예컨대 눈에는 ‘안식(眼識)’, 귀에는 ‘이식(耳識)’, 코에는 ‘비식(鼻識)’이 존재한다. 이는 곧 하나의 인식 구조가 아닌, 다중 주체의 다층적 인식 흐름이라는 뜻이며, 언어 또한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해체적 구성물로 기능한다.

      이 구조에서 말은 주체의 표현이 아니라 식의 다중 분기점에서 우연히 형성된 잔류물이다.

      불교 언어학은 이를 통해 언어를 고정된 자아의 표현이 아닌, 인식과 감각, 판단과 반응이 부딪히는 지점의 잔향(잔여의 언어)으로 간주한다.

      말은 주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식이 조건 속에서 반응하며 발생하는 순간적 언어적 파편인 것이다.

      결국 식은 오온 언어학을 통해 존재를 말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말은 존재를 설명할 수 없고, 존재는 말해지는 순간 사라지며, 언어는 그 사라짐의 흔적만을 남긴다. 이것이 바로 오온을 언어로 말하면서 언어를 해체해 나가는 불교 언어의 탈주적 지향성이다.

       

      오온의 비언어적 계기

      오온의 비언어적 계기는 오온 언어학이 도달하는 마지막 지점, 말로 표현되기 이전의 비언어적 인식 구조의 구성 방식을 다룬다. 불교에서 오온은 언어화 이전부터 작동하며, 수행자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오온의 구성과 해체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때 존재는 말이 아닌 감응, 직관, 통찰을 통해 파악되며, 언어는 그 결과가 아니라 그 이전의 침묵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가 된다.

      선종에서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상태에서 오온이 해체되는 순간이 바로 깨달음이라 여긴다.

      수행자가 언어를 통해 오온을 분석할 때, 그는 말로 자신을 해체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해체가 완성되는 순간, 말은 침묵으로, 분석은 통합으로, 분해는 환멸을 통한 전환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비언어적 계기는 존재를 말하는 언어의 해체뿐 아니라,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말의 사전 조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불교 언어학은 오온을 통해 언어가 존재를 구성하지 못함을 증명하고, 오히려 언어가 존재를 조작하거나 은폐하지 않도록, 말 이전의 감응적 진리 구조를 설계하는 수행의 언어 시스템을 구축한다.

       

      맺음말: 오온 언어학이 드러내는 존재의 해체적 문법

      존재의 다층 구조를 말하는 기술로서의 오온 언어학은 인간을 설명하기 위한 철학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고정관념 자체를 해체하기 위한 언어적 해체의 실천 도구다. 오온은 존재를 말하면서 동시에 존재를 지우며, 언어는 실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실체 없음의 윤리를 구현하는 경로다.

      이 글은 오온의 다섯 요소 색, 수, 상, 행, 식이 각각 언어 안에서 어떻게 기능하며, 어떻게 그 자체로 말을 해체하고 수행을 이끄는 장치가 되는지를 철학적·언어학적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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