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경계 넘어서는 불교의 초언어적 표현

1. 초언어 구조론: 불립문자에서 시작되는 언어의 무기능 철학

초언어 구조론은 불교 언어학에서 발화 가능성과 발화 불가능성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긴장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초기 대승불교, 특히 선종에서는 언어의 유용성보다는 한계에 주목하며,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초언어적 표현 행위를 수행의 본질로 삼았다. 그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불립문자(不立文字)이다.

불립문자는 "문자로 서지 않는다",  글이나 말로 진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이 선언은 언어를 무용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어가 닿지 못하는 진실의 차원을 강조하기 위한 극단적 방식이다.

언어가 오히려 진실을 가리고, 개념이 진리에 덧칠이 된다고 본 불교는 이 한계를 직시한 후, 초언어적 수단으로 진리를 전하려 했다.

초언어 구조론은 현대 언어철학에서 논의되는 ‘언어 외적 기호 전달(extralinguistic signification)’ 개념과 교차하며, 의미 생성이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언어 바깥의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사고틀을 제공한다.

불교는 이 틀을 수행적 실천으로 구현하며, 언어를 초과한 존재적 이해를 목표로 삼는다.

 

2. 무지시 발화술: 지시하지 않음으로 의미를 생성하는 언어 전략

무지시 발화술은 불교의 언어 사용이 때때로 명확한 지시 대상 없이 행해지면서도, 수신자에게 강력한 통찰을 유도하는 전략을 뜻한다. 이 전략은 기호학의 기본 원리 (기표가 기의를 지시한다는 구조)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불교는 오히려 기표가 기의를 지시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은 이해가 발생한다고 본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무엇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선사는 단지 “삼근(三斤)의 아마(麻)”라고 대답한다. 이 응답은 표면적으로 전혀 관련 없는 의미를 제시하는 듯하지만, 그 지시 부재 자체가 사유의 패턴을 파괴하고, 개념화를 멈추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무지시 발화술은 지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의 맥락과 수용 방식을 수행자의 내면에 위임하는 언어 철학이다.

현대 담화이론의 ‘개방형 텍스트(open text)’ 개념과 유사하되, 불교에서는 이러한 열림 자체가 깨달음의 출입문이 된다.

 

 

언어의 경계 넘어서는 불교의 초언어적 표현

 

3. 비의미적 기호행위: 의미 없는 말이 지닌 깨달음의 실현력

비의미적 기호행위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말이나 행위가 수행자에게 언어 이상의 영향을 미치는 불교의 실천 언어 형태를 지칭한다. 여기서 핵심은 의도적 무의미(meaninglessness by design)다.

발화자는 스스로 의미를 배제하고, 수신자는 그 의미 부재 속에서 자각을 끌어올린다.

‘무문관(無門關)’에 등장하는 공안들은 대부분 이러한 구조를 지닌다.

한 스님이 “참선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뜰 앞의 잣나무”라는 대답은 표면적으로는 무의미하다.

이 말은 질문의 틀을 깨고, 언어화된 기대 자체를 무너뜨리는 충격을 통해 수행자에게 깨달음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비의미적 기호행위는 구조주의 기호학에서 의미의 고정성을 해체하고, 탈구축 이론에서 제안하는 ‘반기호적 의미 생성 과정’과 유사하다. 하지만 불교는 그 과정을 단지 이론적 실험이 아닌 내면 실천의 도구로 사용한다.

말이 아니라, 말의 부재를 통해서 자각을 열어가는 이 구조는 불교 언어의 핵심 정체성 중 하나다.

 

4. 초감각적 언어변환: 육근(六根)을 초월한 직지 표현 구조

초감각적 언어변환은 불교에서 언어가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을 넘어선 형태로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수행적 언어 전략이다. 언어는 더 이상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전체적인 존재 상태에서 발생하는 감응적 구조로 전환된다.

『화엄경』이나 『능엄경』 등에서는 감각의 장벽을 초월하여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경지, 심득(心得)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수행자가 일정한 직관적 집중 상태에 도달했을 때,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법을 이해하고, 설법하지 않아도 진리를 감득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초감각적 언어변환은 현대 뇌과학이나 인지언어학에서도 ‘의식 상태 전이 간섭 통로(interconscious signal modulation)’와 같은 개념으로 논의되고 있다.

불교는 이를 수행을 통한 신체-언어의 탈경계화로 받아들인다.

언어는 발화가 아니라, 전 존재로 구현될 수 있는 감응적 실재다.

 

5. 언어이탈 수행구조: 말의 구조를 넘어서 수행으로 진입하는 통로

언어이탈 수행구조는 불교가 언어를 궁극적으로는 버려야 할 도구로 간주하고, 그 이탈을 통해 수행자가 진리의 체험에 도달하도록 하는 종합적인 실천 설계다.

단순한 ‘침묵’이 아닌, 말을 통과하고, 말을 무너뜨리고, 말을 넘어서게 하는 세 단계 구조로 구성된다.

첫째, 언어의 유익함을 이해한다. 둘째, 언어의 한계를 체험한다. 셋째, 언어 없이 존재하는 법을 익힌다. 이러한 구조는 고승들의 일화 속에서 자주 나타난다.

한 고승은 묵묵히 돌을 닦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제자는 그 모습에서 말보다 큰 법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언어이탈 수행구조는 현대 인지과학에서 ‘포스트언어적 자각(post-linguistic awareness)’의 개념과 교차된다. 불교에서는 그것이 단지 뇌의 기능 변화가 아닌, 업(業)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실천 방식이라는 점에서 윤리적 차원을 획득한다.

 

맺음말: 초언어는 비어 있으나 가득한, 말 너머의 진리

불교의 초언어적 표현은 단순한 언어 해체가 아니다. 말이 도달하지 못하는 자리를 가리키고, 언어가 실패할 때 비로소 나타나는 진실의 모습을 체험하게 한다.

‘초언어 구조론’, ‘무지시 발화술’, ‘비의미적 기호행위’, ‘초감각적 언어변환’, ‘언어이탈 수행구조’는 모두 불교 언어학이 언어를 수단이 아닌 수행 그 자체로 변환시킨 전략이다.

오늘날 디지털 콘텐츠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불교는 말이 아닌 말하지 않음 속의 울림, 언어의 외피 너머의 진리를 성찰하게 하는 초월적 메시지를 전달한다.